[스크랩] 무이산(천유봉, 수렴동, 대왕봉)
천유봉(天游峰), 수렴동(水簾洞), 대왕봉(大王峰)

천유봉 등산 경로
회회동(回回洞)-수월정(水月亭)-다동(茶洞)-관폭정(觀瀑亭)-천유봉(天游峰)-운와(雲窩), 약 1시간 40분 소요

동굴 같은 계단길을 지나는 회회동(回回洞)

우리나라 파초일엽 보다도 큰 일엽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수월정(水月亭)에서 바라 본 쇄포암과 반산정(半山亭)

은병만장단애(隱屛万丈丹崖)

다동(茶洞)
다동은 천유봉 아래에 있으며 옥화동(玉華洞), 승선동(升仙洞), 벽옥동(碧玉洞), 사주암(四周岩) 등으로 불리우며 높은 암벽사이로 폭포가 눈발처럼 날리고 물이 흘러내려 속세와 단절된 신선이 사는 곳과 같은 경관이다.
이곳 암벽은 거대한 성벽처럼 둘러쳐져 있고 서쪽의 바위틈 한곳이 유일한 통로이다. 다동 북면의 선욕담(仙浴潭)은 천유봉 정상에서 흩날리듯 떨어지는 설화천(雪花泉)이 이곳으로 모여 돌아나가 한여름 피서지로도 이상적인 곳이다. 사진상에 보이는 "茶洞" 두 글자가 말해주듯 이곳은 무이암차 최초의 발원지이자 암차 생장의 낙원이기도 하다. 다동은 남쪽의 은병봉(隱屛峰)과 북쪽의 천유봉(天游峰)에 오르려면 필히 지나쳐야 하는 곳이다.

선욕담(仙浴潭)
천유봉 아래 다동 옆에 있으며 여름철 냉기가 나오는 곳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곳은 선녀(仙女)가 목욕하는 곳으로 범인(凡人)들이 엿보아서는 안되는 곳인데 완전 개방되어 여행객들이 경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이산에는 선욕담과 같이 "仙"자가 들어있는 명칭으로는 선범계(仙凡界), 선조대(仙釣臺), 통선정(通仙井), 선장봉(仙掌峰) 등이 있다.


가파른 은병봉(隱屛峰) 등로길과 천길 단애(斷崖)

천유봉(天游峰)은 해발 408.8m로 육곡 북쪽에 있으며 핵심 경구(景區)이다. 만길절벽과 높이 솟아오른 암군(岩群)의 정상이며 비가 온 뒤 하늘이 맑게 개이거나 이른 아침 햇살이 비출 때 산 골짜기마다 구름이 자욱하여 망망대해를 이루면 천태만상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마치 봉래선경(蓬萊仙境)에 와 있는 것 같다. 명나라 말기 유명한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은 "其不臨溪而能盡九曲之勝, 此峰固應第一也" 어찌 九曲溪를 가보지 않고서 九曲의 절경을 다 알 수 있는가 이 봉우리가 당연히 최고다라고 천유봉을 평하였다. 봉우리 정상에는 천유관(天游觀), 묘고대(妙高臺), 호마간(胡麻澗), 진의강(振衣崗), 천유정(天游亭) 등이 있다. 바위면에 흐르는 물은 설화천(雪化泉)이며 선욕담으로 떨어진다.



천유봉 맞은편에 첨예하게 솟은 접순봉(接筍峰)이 내려다 보인다. 세갈래의 균열이 생겨 세개의 암석같은데 마치 대나무 순이 솟은 모양이다. 다동의 남쪽에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까마득한 정상까지 가파르게 이어져 아찔한 느낌을 준다. 전설에 의하면 접순봉 아래에 석당사(石堂寺)란 절이 있었는데 한명의 부지런하고 착한 승려와 99명의 게으르고 나태한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깍아지른 절벽 아래에는 육병(肉餠)이라 부르는 세 개의 바위덩어리가 있는데 게으른 99명의 승려가 떡이 된 것이라 한다.

천유봉 정상에 있는 천유각(天遊閣)은 도교의 천궁(天宮)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 한다.

중국의 산은 어딜가나 암반 자체를 깍아 계단길을 만든 모습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운와(雲窩)는 구곡계 오곡 북쪽에 있으며 주위에는 향성암(響聲岩), 단로암(丹爐岩), 선적암(仙迹岩), 천주봉(天柱峰), 갱의대(更衣臺), 천유봉(天游峰), 은병봉(隱屛峰) 등이 환상선(環狀線)을 그리고 있다. 이 곳은 푸른 단애가 우뚝 솟아 있고 푸른물이 휘돌아 흐르고 기암괴석들로 산세가 높고 가파르다. 운와 앞에는 돌출된 거대한 돌이 있는데 까무잡잡한 코끼리 같다하여 "철상석(鐵象石)"이라 부르는데 돌 앞은 하운와(下雲窩) 돌 뒤는 상운와(上雲窩)라 하며 크고 작은 십여개의 동굴이 있다. 봄 여름 두 계절에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운무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 돌 봉우리 사이를 떠다닌다. 그 형상이 천태만상으로 시시각각 변하여 운해(雲海), 운룡(雲龍), 불광(佛光), 홍교(虹橋), 탄운(呑雲), 와운(臥雲) 등의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쇄포암(曬布岩)
쇄포암은 육곡 북쪽에 있는 천유봉 아래에 있으며 선장봉(仙掌峰)이라고도 하는데 무이산에서 가장 큰 바위이다. 흡사 칼이나 도끼로 찍어 내리친 흔적 같은 거대한 암벽으로 높이 150m, 길이 600m이며 광활하고 평판한 수직 직벽의 형상이다. 마치 거대한 하나의 부채 같은 병풍을 천지간에 곧추 세워 놓은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흐르는 물에 의하여 새겨진 흔적은 수백개의 베를 암벽에 가득 널어 놓은 듯한 물줄기 흔적들을 만들어 놓았다.
서쪽에서 햇볕이 암벽을 비추면 모든 가닥들의 흔적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 마치 선인(仙人)이 베를 볕에 너는 것과 같다하여 "쇄포암(曬布岩)이라 부르게 되었다.
쇄포암에는 여러곳에 마애석각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壁立万仞(벽립만인)" 4개 글자로 만길절벽이란 뜻이다. 주위에는 복호암(伏虎岩), 사마천(司馬泉), 은병봉(隱屛峰), 백운정(白云亭), 수월정(水月亭), 수운료(水云寮), 접순봉(接筍峰), 향성암(響聲岩), 소일선천(小一綫天) 등이 있다.

접순봉 전경

홍안어(紅眼魚), 구곡계에는 잉어와 비슷한 홍안어가 한가로이 떼를 지어 유영(游泳)하고 있다.

수렴동(水簾洞) - 대홍포(大紅袍) 景區 지도

장당간(章堂澗) 계곡 초입 풍경, 계곡 안에는 수렴동(水簾洞), 응취암(鷹嘴岩), 고애거(古崖居) 등이 있으며 계곡 곳곳에는 암반 위에서 자라는 암차(岩茶)밭이 들어서 있다.

무이암차에는 4대 명차라 하여 대홍포(大紅袍), 철라한(鐵羅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水金龜)가 있으며 이중 대홍포는 "차왕(茶王)" 의 명예를 누릴 정도로 최고로 친다.

많은 사람들이 차잎을 수확하고 있다. 길가에 앉아 주발에 반찬 한가지를 얹어 식사하는 모습이 소박한 농민들의 삶의 애환이 엿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슬하다.

중국에서 차로 유명한 대표적인 곳은 녹차로 유명한 항주 용정, 보이차로 유명한 운남 쌍판납 그리고 우롱차로 유명한 이곳 복건성 무이산(우이산)이다.
우롱차는 녹차의 청량함과 감미로운 발효차의 장점을 지니는 것으로 마신 뒤 목구멍에서 향기가 올라온다. 전설에 의하면 한 농부가 차잎을 따러 가던 중 검은 뱀(黑蛇)이 차나무를 휘감고 있어 이상히 여겨 그 찻잎을 따와 차를 만들어 마셔보니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본디 뱀을 싫어하고 용(龍)을 좋아하는 습속이 있기 때문에 검은 뱀(黑蛇)을 오룡(烏龍 ; 검은 용)으로 미화시키고 이 차(茶)를 가리켜 "오룡차(烏龍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烏龍茶"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오룡차"라고 읽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우롱차"라 하여 오룡차와 우롱차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협곡으로 둘러싸여진 장당간(章堂澗)

응취암(鷹嘴岩)은 고애거(古崖居)에서 수백미터 거리에 있으며 거대한 매부리 형상의 바위이다.

수렴동(水簾洞)은 "당요동천(唐曜洞天)"이라 부르기도 하며 봉우리 정상에서 두 물줄기가 품어 내리치듯 떨어져 반은 떨어지고 반은 비산(飛散)되는 경관이 흡사 발(簾)을 친것과 같아 수렴동이 부른다. 수렴동은 높이가 100여미터에 달하고 절벽 정상부가 앞으로 돌출되어 광대한 바위동굴을 형성하였다. 두 물줄기는 연중 마르지 않고 떨어져 아래에 짙은 비취빛의 목용지(沐龍池)를 만들어 놓았다.

목용지(沐龍池)는 남좌여우(男左女右)라 남자는 좌측으로 여자는 우측으로 돌아야 장수를 하고 소원을 성취한다 하여 돌고 있는 모습이다. 비류직하(飛流直下)하는 물줄기는 이리저리 이동하며 떨어지는데 수량이 많은 여름철에 보면 대단할 것 같다.

비류직하(飛流直下)하는 물줄기를 위로 바라보며 찍은 모습

삼현사(三賢祠)는 수렴동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원명(原名)은 병산선생사(屛山先生祠)이며 남송(南宋) 소흥(紹興) 17년(서기 1147년)에 처음 세워졌다. 처음에는 병산선생 유자취(劉子翠)를 모신 사당이었는데 송나라 때 영종(寧宗)과 가태(嘉泰)(1201-1204년) 사이에 주희(朱熹)와 류보(劉甫)를 함께 모셔 삼현사(三賢祠)라 명칭을 변경하였다.

삼현사 처마 난간과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물줄기

수렴동을 돌아 내려오던 중에 옛 유적지가 보인다. 바위 절벽면은 옛 토담집 벽면 같이 진흙을 다져 쌓은 것 같아 견고해 보이지 않는다.


고애거(古崖居) 원명(原名)은 천차가(天車架)이며 무이산 동북부 단하장(丹霞嶂)에 있다. 단하장은 마치 성벽 같이 깍아지른 바위 절벽으로 지면으로부터 30여미터 지점에 있으며 절벽 틈새에 난 동굴이다. 동굴에는 굄목으로 엮어세운 나무누각들이 아래 위 두 동굴 모두 있는데 백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하여 오는 설에 의하면 청나라 함풍(咸豊) 연간에 이 지방 재산가 세가구가 태평군(太平軍)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건축한 "피난소(避難所)"이다.

고애거를 줌으로 확대하여 찍은 모습

대왕봉(大王峰) 부근 안내도

무이궁(武夷宮) 주자기념관 옆에는 무이궁이 있다. 무이궁은 무이산에서 가장 오래된 궁관이다. 당나라 시기인 742-755년 사이에 설치되어 송나라 때는 300여칸에 이르렀고 "충우만년궁(沖佑萬年宮)"이란 사액을 받았다. 송나라 때 주자, 육우, 여조겸 등 25명의 유명한 학자가 충우관에 와서 제사를 주관하여 매년 가을 무이군(武夷君)에게 제사하였다. 현재는 용정(龍井)과 만년궁(萬年궁), 삼청전(三淸殿) 등이 남아 있다.

무이궁을 지나 대왕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돌계단 길

대왕봉(大王峰) 수직 틈새 등로

사람 하나 겨우 통과할 틈새 등로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계단이다.

등로 초반부에 우측으로 30m 지점에 투양동(投陽洞)이란 막다른 동굴 조망지가 있어 들려 본다.

투양동에서 바라 본 구곡계 풍경

지그재그로 난 계단 등로, 가파르게 수직상승하듯 오르지만 매우 재미있는 길이다.

오르던 중 아래를 내려다 보며

대왕봉 정상에서 바라 본 무이산관광특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우측 방향 다리 옆으로 구곡부터 일곡까지 뱃노리를 마친 대나무뗏목이 어렴풋이 보인다.

카메라 줌으로 당겨 찍은 사진이다. 다시 트럭에 실어 성촌진 구곡 부두로 이동한다.

대왕봉 등산을 마치고 가파른 동쪽방향 등로로 내려온다.

지지암(止止庵) 부근 구곡계 조망터에서 찍은 일곡 풍경

지지암(止止庵) 도교사원과 웅장한 모습의 대왕암

구곡계에는 물고기도 많이 눈에 띈다.

봉미죽(鳳尾竹), 예전에 산동성 연대(煙臺)에 있는 곤유산(崑崳山) 등산 중에 길을 잘못들어 숲속을 헤치고 나오다 이 가시같은 나뭇잎 침에 찔리어 고생한 적이 있다. 언듯보면 전나무나 비자나무 같아 보이는데 국내에는 없는 나무이다.

비파(枇杷)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생전 처음으로 무이산 등산 중에 사먹어 보았는데 살구의 신맛을 제외한 맛과 같다. 중국돈 10원이면 꽤 많은 양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