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스크랩] 무이산(九曲溪)

풍암1 2011. 1. 26. 10:34

 

구곡계(九曲溪)

 

2008년 5월 9~12일(3박 4일)

 

 *일정 :  9일 - 상해도착 신천지, 난징루, 상해임시정부, 와이탄 야경, 무이산으로 이동

           10일 - 무이산 구곡계, 천유봉 등산

           11일 - 수렴동, 대왕봉 등산

           12일 - 인천공항 도착 
 


 무이산은 상해 푸동(浦東)공항에서 복건성(福建省) 무이산시 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 거리다. 인구 24만의 소도시인 무이산시 서남쪽 10km 외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9년 12월 1일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문화유산에 등록된 명산이다. 

 

무이산이 있는 복건성은 동쪽으로 대만(台灣)과 마주하고 동북쪽으로는 절강성(浙江省)과 잇닿아 있으며 서북쪽은 무이산맥과 강서성(江西省)과 인접하고 서남은 광동성(廣東省)과 인접해 있다. 인구 3,471만으로 한족, 사족, 회족, 만족, 묘족, 장족 그리고 고산족 등의 민족이 있으며 성소재지는 복주시(福州市)이다. 복건성 기후는 아열대기후라 온난하고 습윤하다. 복주 이남은 일년내내 겨울철이 없다. 연 평균 기온은 17~22℃, 연해지역이10~13, 1월이 가장 춥고 7월이 가장 더운데 최고기온이 36~38℃에 달하며 연평균 강수량은 1,400~2,000mm이다. 일찍이 원시사회때부터 인류가 생존 번창하였고 원나라 때부터 복건성이라 부르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이산 관광구역은 크게 6개 경구(景區)로 나누어진다.

 

- 운와(云窩), 천유(天游), 도원동경구(桃源洞景區) : 천유봉(天游峰), 다동(茶洞), 옥화봉(玉華峰), 운와(雲窩), 설화천(雪花泉), 선욕담(仙浴潭), 호마간(胡麻澗), 천유관(天游觀), 일람대(一覽臺), 도원동(桃源洞), 고루암(鼓樓岩), 금전지(金池), 개원당(開源堂), 벽소동(碧洞), 랑간암(琅岩), 북랑암(北廊岩), 삼층봉(三層峰), 삼앙봉(三仰峰) 等

- 무이궁경구(武夷宮景區) : 무이궁(武夷宮), 대왕봉(大王峰), 만정봉(亭峰), 환골암(換骨岩), 삼고석(三姑石), 선학암(仙鶴岩), 방송고가(仿宋古街) 等 

 

- 수렴동-대홍포경구(水簾洞-大紅袍景區) : 수렴동(水簾洞), 청사암(靑獅岩), 미타암(彌陀岩), 청원암(淸源岩), 유관채(劉官寨), 벽석암장당간(碧石岩章堂澗), 응취암(鷹嘴岩), 천차가(天車架), 옥주봉(玉柱峰), 류향간(流香澗), 삼화봉(三花峰), 두할암(杜轄岩), 대홍포다수(大紅袍茶樹), 영락선사(永樂禪寺) 等

 

- 일선천-호소암경구(一天-虎嘯岩景區) : 일선천(一天), 삼계봉(三峰), 창기령(倉基嶺), 누각암(樓閣岩), 능소봉(凌峰), 석문암(石門岩), 호소암(虎嘯岩) 等

 

- 연화봉, 우림정요지경구(蓮花峰, 遇林亭窯址景區) : 연화봉(蓮花峰), 구빙고불(古佛), 묘연사(妙蓮寺), 우림정요지(遇林亭窯址), 요지전관(窯址展館), 용요(龍窯), 도파(陶), 연화폭포(蓮花瀑布) 等 

 

- 무이산민월왕성경구(武夷山越王城景區) : 무이산민월왕성은 "古漢城", "王城"으로도 부르며 무이궁 남쪽 24km지점에 있다. 성지(城址) 면적은 48만 평방미터이며 성내에는 왕과 귀족 주거지, 대규모 관청, 주택, 공방이 있고 성밖에는 묘지터가 있다. 또한 무이산고월문화(武夷山古越文化)는 3,800여년 전에 선관(船棺) 유물을 남겼다.

 

무이산 6개 관광구역 중 천유, 도원동경구, 무이궁경구 그리고 수렴동, 대홍포경구만을 2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돌아본다. 6개 경구를 모두 보려면 짧게는 3일 길게는 4일이면 족하다. 

 


 2005년 8월 4박 5일의 일정으로 안휘성 구화산과 황산 등산을 마치고 항주를 거쳐 상해에 잠시 들러 돌아온 적이 있다. 처음 본 상해의 고층건물과 도시규모에 눈이 휘동그레 졌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인사동과 명동격인 신천지, 난징루 등을 둘러보고 도시외형에 가려진 문화적 격차를 느낄 수 있는 이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카메라가 있어도 담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이곳 와이탄(外灘) 야경은 한번쯤 볼만한 풍경이다.
 


 


 황포강에 떠있는 유람선과 뒷배경 동방명주대탑
 


무이산은 총면적 999.75평방미터, 핵심면적 635.75평방미터이며, 맑고 아름다운 구곡계와 하늘높이 솟아오른 36 기봉(奇峰), 99암(岩)이 절묘하게 형성된 자연경관으로 인류문화와 완벽하게 융합된 명산이다. 

세계생물의 종 다양성 보호구역으로 식물 3,000여종, 동물 400여종, 뱀 64종, 조류 4,006종, 곤충류 31개목(目)이 분포하고 있어 생물학계에서는 "세계생물의 창(窓), "곤충의 세계", 조류의 천당", "뱀의 왕국"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인류와 역사문화 측면으로 보면 3,800여년전의 "가학선관"(架壑船棺)과 "홍교판"(虹橋板)을 포함한 민월족 문화와 2,000여년전의 민월왕 성 그리고 당, 송, 원, 명, 청 등 역대 절벽에 새겨진 마애석각(摩崖石刻) 및 인류문화에 심원한 영향을 준 주자이학(朱子理學), 오룡차(烏龍茶)의 비조(鼻祖) 무이암차(武夷岩茶) 등으로 오늘의 휘황찬란한 무이문화를 구축하였다. 

 

대왕봉(大王峰)과 만정봉(亭峰)이 전면으로 보이는 호텔촌에서 버스를 타고 구곡계(九曲溪) 출발점인 성촌진(星村鎭)으로 향한다.

 

 

구곡계(九曲溪)는 총길이 9.5km의 물줄기를 따라 36峰과 99岩이 기암절벽을 이루어 물굽이를 돌아 나갈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성촌진(星村鎭) 죽벌(竹筏) 마두(碼頭 ; 부두)에서 두사람의 뱃사공이 한조가 되어 폭 2m, 길이 9m의 대나무뗏목(竹筏)을 몰고 九曲부터 一曲까지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유람한다. 대나무뗏목 바닥은 물이 그대로 스며들어 타기전에 신발을 쌀 비닐봉투를 나누어 주는데 유람시간은 보통 한시간 반이 소요되지만 뱃사공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성촌진 죽벌마두(星村鎭 竹筏碼頭 ; 대나무뗏목 부두) 전경
 


 우측 세 봉우리가 삼앙봉(三仰峰)이다. 삼앙봉은 칠곡 북쪽에 있으며 무이산풍경구 중 최고봉으로 해발 717.7m이다. 삼앙봉에는 벽소동(碧洞), 단정(丹井), 기반석(棋盤石), 삼은대(三隱臺), 적취암(積翠庵) 등이 있다.  

 


뗏목은 굵은 대나무 7~8개를 엮은 두대를 잇대어 만들었는데 6개의 좌석이 있고 구명조끼를 입어야한다.

뱃사공은 대나무 삿대로 바닥을 밀어 속도를 내거나 방향을 잡으며 물살의 흐름에 의지하여 떠내려 가다 수심이 깊은 소용돌이에 이르면 냇가 바위벽면을 밀어 방향을 잡는데 오랜세월 같은 지점을 찍었는지 깊은 구멍이 뚫려져 있다. 
 


무이산은 주자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朱子(1130-1200) 본명 熹 복건성에서 나서 주돈이, 정호, 정이 등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유교 철학인 성리학을 집대성하였으며, 1179년에는 백록동서원을 일으켜 서원교육의 시범을 보였다. 1183년 53세에 무이산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하며 무이정사 주변의 누정(樓亭) 과 지형을 시로 읊은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지었고 1184년에는 무이계(武夷溪)의 구곡 경치를 읊은 무이도가(武夷櫂歌) 즉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주자가 무이구곡가를 지을 당시에는 일곡부터 구곡까지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물굽이마다 풍류를 읊었는데 물살따라 내려간 이야기에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삽입하려니 성기기는 하지만 구곡계의 정취를 이해하는데 필요할 것 같아 적어본다. 주자의 무이구곡가는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 한자마저 달라 어느 것이 정설인지 알기 어려워 나름의 판단으로 기재한다.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에 다달으니 눈앞이 활연히 트이고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에 맺힌 이슬 평천을 바라보네

漁郞更覓桃源路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도원 가는길을 찾지만

除是人間別有天  이곳이 인간세상의 별천지라네

 

평천은 구곡의 끝에 있는 지명이다. 이곳은 개천이 평평하게 흐르는데 뽕나무와 삼나무가 들을 채우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어 무릉도원의 경치라고 한다. 이곳에 와서 또다시 별천지를 찾으려 하지만 이곳이 바로 이상세계라고 노래하였다. 

 


八曲風煙勢欲開   팔곡에 바람이 불어 구름은 개이려하고

鼓樓巖下水濚   고루암 아래에는 물이 돌아드네

莫言此處無佳景  이곳에 절경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

自是遊人不上來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팔곡은 산이 높아 물살이 빠르고 각종 동물 모양의 바위가 많다. 고루암 아래에는 사자모양을 한 바위도 있고 거북 모양의 바위도 있다. 그런 팔곡의 정경을 사람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느덧 신선이 사는 곳이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다.



마반석(磨盤石)은 팔곡 남쪽 냇가에 있으며 이명(異名)으로 대소늠석(大小石), 늠석암(石岩)으로 불리운다. 磨盤은 중국말로 맷돌이며 은 고대 식량창고로써 신선들의 쌀창고와 같은 의미이다. 상하 두덩어리의 거석이 원형으로 우뚝 솟아 있다. 마반석 부근에는 수어석(水魚石), 낙타봉(駱駝峰), 상비암(象鼻岩), 방생담(放生潭) 등이 있다.
 


 


품자암(品字岩)은 팔곡의 북쪽에 3개의 커다란 바위가 品자 모양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품자암은 삼교봉(三敎峰)이라고도 하는데 유(儒), 불(佛), 도(道)의 삼교를 가리킨다. 품자암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무이산에는 유, 불, 도의 삼교가 모두 들어있다. 유가로 말하면 주자의 무이정사요, 불가로는 극락국, 도가로 말하면 도원동이다.  
 


쌍유봉(雙乳峰)은 이명(異名)으로 고자봉(鼓子峰), 병연봉(幷蓮峰)이며 팔곡 중 최고봉이다. 쌍유봉 아래에는 당나라 때 사람이 왕자를 공경하여 창건한 석고도원유지(石鼓道院遺址)가 있으며 절벽에 어지러이 뚫려있는 구멍에는 "홍교판"(虹橋板) 잔편(殘片)들이 들어있다.  
 


 


 


매 물굽이 마다 벽면에 붉은 글씨로 암각하여 놓았다.
  


七曲에서 지나온 八曲을 보며 품자암과 쌍유봉이 보인다.
 


七曲移船上碧灘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에 올라서

隱屛仙掌更回看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네

却燐昨夜峰頭雨  어여뻐라 지난밤 봉우리에 비내리더니

添得飛泉幾道寒  나는듯한 물줄기 몇줄기런가

 

칠곡에는 달공탄(獺控灘)이란 여울이 있다. 달공탄에서 아래쪽을 보면 육곡에 은병봉과 선장봉(쇄포암)이 우뚝 솟아 보인다. 배가 칠곡으로 올라감에 은병봉과 선장봉이 돌아보듯이 솟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六曲蒼屛繞碧灣  육곡의 푸른 병풍바위는 시퍼런 물굽이에 둘러 있는데

終日掩柴關  띠집은 종일토록 사립문이 닫혀있네

客來櫂巖花落  객이 찾아와 노에 기대어 바위에 꽃이 떨어지는데

猿鳥不驚春意閑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고 봄빛은 완연하네

 

무이구곡은 육곡에 이르러 북쪽에 우뚝 솟은 쇄포암을 바라보며 휘감아돈다. 쇄포암에는 수많은 물줄기 자국이 내리뻗은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쇄포암 아래는 산을 등지고 계곡을 앞에 둔 그윽한 곳이어서 주자는 이곳에서 저절로 바위꽃이 떨어지고 원숭이와 새가 놀라지 않는 자연의 극치를 노래하였다.   
 


쇄포암(布岩)과 맞은편 접순봉(接筍峰) 
 


향성암(響聲岩)은 육곡 남쪽 계곡변 양쪽에 높은 절벽이막아 여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양쪽 절벽에 메아리가 부딪치며 멀리 퍼져나간다. 그래서 향성암이라 부른다. 향성암 절벽에는 송, 원, 명 삼대의 마애석각 20여개가 있다. 이중 주희가 쓴 "서자여사"(逝者如斯)는 무이산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새겨진 마애석각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로서 "세월은 이처럼 흘러가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는구나"라는 말의 준말이다.
 


향성암 부근에서 뒤돌아 본 천유봉 전경
 


五曲山高雲氣深  오곡은 산 높고 구름 깊어

長時煙雨暗平林  언제나 안개비에 젖어 평림이 어둑하네

林間有客無人識  숲속의 나그네 아는 사람 없으니

乃聲中萬苦心  사공의 노랫소리에 만고수심 깊어지네

 

이 시에서 높은 산은 은병봉(隱屛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아래에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다. 평림(平林)은 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을 말한다. 산은 높고 구름이 깊어 煙雨가 평림의 입구에 가득한데 나그네 즉 주자가 수풀 속을 거닐 때 들려오는 뱃사공의 노래소리에 만고의 수심이 깊어지는 감정을 노래했다. 
 


갱의대(更衣臺)와 천주봉(天柱峰)

갱의대와 천주봉은 오곡 물가변에 우뚝 솟아있는 형세로 서로 이웃하고 있다. 갱의대 중간 벽면에는 "갱의대(更衣臺)"와 "옥황대천존(玉皇大天尊)"이란 마애석각이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오곡 주변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설에 의하면 갱의대는 위(魏) 왕자 건(騫)이 의상을 바꿔입고 천주봉에 올라 하늘로 승천하였다하여 갱의대라 부른다. 

갱의대 뒷편에 서있는 천주봉은 술단지를 닮아 주담봉(酒峰)이라한다. 주담(酒壜)은 중국말로 술단지이다.

주위에는 만대봉(晩對峰)과 시검석(試劍石) 있다.   

 


전면에 보이는 오곡다리를 지나 사곡으로 접어든다.
 


四曲東西兩石巖     사곡이라 동서 두 바위에

巖花垂露碧監毛  參毛 핀 꽃은 이슬을 머금은 채 무성하네

金鷄叫罷無人見    금닭이 울어 아침을 여는데 보는 사람이 없고

月滿空山水滿潭    둥근달은 동산에 가득하고 물은 여울에 가득차네

 

사곡에는 거대한 암산인 대장봉과 선조대가 마주보고 있다. 대장봉 암벽 중간의 금계동굴(金鷄洞)에는 새벽을 알리는 금닭이 있었다 하고 그아래에는 무이구곡에서 가장 깊은 와룡담(臥龍潭)이 있다. 대장봉과 선조대 절벽에 핀 꽃은 이슬을 머금고 있고 새벽에는 금닭이 울고 밤에는 달빛이 와룡담에 그윽히 비치는 사곡의 정경을 읊었다.  
 


사곡으로 돌아들면 거대한 대장봉(大藏峰)이 앞을 가로 막는다. 대장봉은 도가(道家)가 대장경(大藏經)을 숨겨둔 곳이라 하며 천길 절벽같이 우뚝솟아 웅장하다. 절벽에는 두개의 작은 동굴이 있는데 위굴은 "계과암(鷄岩)"으로 굴내에는 천년된 벼가 썩지않고 있다. 어느 때 누가 왜 놓았는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아래동굴은 "금계동(金鷄洞)"으로 굴내에는 홍교판(虹橋板)과 선관(船棺)이 있다. 대장봉 바로  와룡담(臥龍潭)은 물빛이 푸르고 너무 깊어 깊이를 알수가 없다고 한다. 대장봉 벽면에는 "류하비취(流霞飛翠)"와 "금계동(金鷄洞)"이라 새긴 마애석각(摩崖石刻)이 있다.
 


무이산(武夷山)은 원래 무이산(武彛山)이라 하였는데 옛날 이 산에 신인(神人) 무이군(武夷君)이 살았다하여 무이산(武夷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무이산 계곡은 一曲 승진동(升眞洞), 二曲 옥녀봉(玉女峰), 三曲 선조대(仙釣臺), 四曲 금계동(金鷄洞), 五曲 무이정사(武夷精舍), 六曲 선장봉(仙掌峰), 七曲 석당사(石唐寺), 八曲 고루암(鼓樓巖) 九曲 신촌시(新村市)이다.
 


 


뒤돌아 본 대장봉(大藏峰)
 


선조대(仙釣臺)는 사곡 북쪽에 있으며 신선이 낚싯대를 드리우던 곳이라 한다. 선조대 절벽위 바위틈에는 낚시대 한개가 비스듬히 나와있다. 천년을 두고 썪지도 않고 그대로 있어 무슨 물건인지 알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강태공이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뒤 돌아본 선조대(仙釣臺), 조어대(釣魚臺)라고도 부르며 물가를 향해 우뚝 솟아오른 형상은 마치 신선노인이 삿갓을 쓰고 물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주위에는 대장봉(大藏峰), 선방암(仙榜岩), 소장봉(小藏峰), 와룡담(臥룡潭) 등이 있다.
 


三曲君看架壑船  삼곡에서 그대는 가학선을 보았는가

不知停櫂何年  노젓기를 멈춘지 얼마인지 모르겠네

桑田海水今如許  무상한 세월이 지금 이와 같으니

泡沫風燈敢自  물거품 같고 바람 앞 등불 같은 가련한 인생이여

 

삼곡에는 험준한 암벽으로 된 소장봉(小藏峰) 아득한 절벽 위 틈 사이로 배모양의 목제관이 있으니 홍교판(虹橋板)과 가학선관(架壑船棺)이다. 주자는 가학선관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읊고 있다.      
  


소장봉(小藏峰)



소장봉 절벽 상단부를 확대한 사진, 가학선관(架壑船棺)을 올려 놓았던 홍교판(虹橋板)이 보인다.

가학선관(架壑船棺)은 배모양의 목관으로 인적이 닿지않는 절벽에 매달거나 암굴에 놓았다. 무이산 선관은 지금으로부터 3,800년전 당시 중국 상(商)나라 시기에  복건성 원주민이었던 월족(越族)의 문화 유산이다. 목관의 재료는 모두 무이산에서 생장하는 녹나무로 만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가학선관은 신선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남긴 배로서 배안에는 유골이 있었다고 하는데 비바람에도 썩지않고 천년을 그대로 있다. 가학선관(架壑船棺)은 골짜기에 설치한 배모양의 관을 말하고 홍교판(虹橋板)은 무지개 다리판이란 의미로 선관을 고정시키기 위한 목판이다. 

 

푸젠성(福建省) 지역은 고대 월족(越族)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월인들은 키가 왜소하고 얼굴이 짧았으며 코가 넓고 눈은 둥글고 컸다. 그들은 강을 끼고 살았고 배와 뗏목을 모는데 능숙했다. 또한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새기는 풍속이 있었다. 진(秦)나라는 푸젠성 지역에 군(郡)을 설치하였지만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기원전 202년, 한(漢) 왕조 시기에 유방이 푸젠지역을 민월국이라 하여 월(越)나라 구천(句踐)의 후손인 무제(無諸)를 왕으로 봉(封)하였다. 무제는 우이샨(武夷山)에 성을 건설하였다. 한무제(漢武帝) 즉위 첫해(기원전 110년)에 대군을 파견하여 민월국을 멸망 시켰다.

 

현재 복건성의 약칭은 민()이다. 민은 뱀을 토템으로 하는 민족의 후예촌락을 가리킨다. 무이산에는 실제 많은 종류의 뱀이 있다. 호텔촌이 있는 무이산국가여유도가구(武夷山國家旅游度假區) 우리말로 말하면 무이산관광특구의 상점 중에는 커다란 뱀이 들어있는 뱀술 전문점이 많다.   
  

 

소장봉을 돌아들면 전방의 시야가 확 트이고 멀리 옥녀봉(玉女峰)이 올연(兀然)히 서있다.  
 

 

二曲亭亭玉女峰  이곡에 우뚝 선 옥녀봉이여

揷花臨水爲誰容  누구를 위하여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는가?

道人不復荒臺夢  그대 막을 도인은 없는데

興入前山翠幾重  흥겨워 앞산 들어가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이곡에는 옥녀봉이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옥녀봉 아래에는 목향담(木香潭)이 있고 옥녀봉 왼쪽에는 면경대(面鏡臺)가 있어 이곡의 산수는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이 수려하다. 주자의 이곡가는 이러한 경치를 읊은 것이다.


 

옥녀봉(玉女峰)과 면경대(面鏡臺)

 

옥녀봉 정상에는 나무가 자라고 절벽은 광택이 나서 마치 옥석을 조각한 모습으로 절색의 소녀가 맑은 물가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형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옥녀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하늘에 살던 옥녀는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되어 돌아갈 줄을 몰랐다. 우연히 대왕(大王)과 알게되어 서로 사랑을 하여 자식을 낳고 인간세상에 살았다. 이를 본 철판도인(鐵板道人)이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고하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철판도인에게 옥녀를 잡아오도록 했다.

옥녀는 대왕과 같이 인간세상에 살고자하여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철판도인은 마법을 써서 옥녀와 대왕을 돌로 만들어 계곡의 양쪽에 두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장(鐵板)이란 병풍바위가 있는데 철판도인이 대왕봉과 옥녀봉이 만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세음보살이 대왕과 옥녀를 불쌍히 여겨 옥녀봉 맞은편에 면경대(面鏡臺)를 두어 서로 얼굴을 비춰보게 하였다고 한다. 

 

 

면경대(面鏡臺)와 두무봉(兜峰)

옥녀와 대왕과의 애뜻한 전설이 전해져오는 면경대에는 하단에 "鏡臺"라 새겨져 있고 왼편으로 두무봉이 보인다. 두무(兜)는 투구라는 말이다.

 

 

뒤돌아 본 옥녀봉 전경

 

 

좌로부터 경대(鏡臺), 옥녀봉(玉女峰), 철판장(鐵板) 전경, 우측 천길 단애(斷崖)가 철판장이며 사진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뒤로 대왕봉(大王峰)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一曲溪邊上釣船    일곡 냇가에서 낚싯배에 오르니

亭峰影晴川  만정봉이 맑은 물에 잠겨있네

虹橋一斷无消息   무지개다리 끊어진 후 소식없고

万壑千岩鎖翠烟   골골이 암봉에는 푸른 안개 자욱하네

 

일곡의 북쪽에는 대왕봉이 솟아있고 대왕봉 왼쪽에 만정봉(亭峰)이 있다. 만정봉은 해발 500m 정도의 산으로 도가(道家)의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가을에 무이군이 허공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가학선관의 흔적이 있다.

 

일곡은 만정봉의 경치를 설명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공자 이후 학문이 끊겨져 사람들이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곡변 마애석각들 구곡계(九曲溪), 점입가경(漸入佳景), 지동인정(智動仁靜), 수광(水光) 등

 


대왕봉(大王峰)은 위왕봉(魏王峰), 사모암(紗帽岩)으로도 부르며 일곡 북쪽에 있다. 높이는 300여미터지만 정상부가 크고 허리부분은 가늘은 형상에다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되어있어 하늘을 받치고 우뚝 선 모습이 영웅의 형상이다. 일곡에서 줌으로 당겨찍은 대왕암, 다음날 수직으로 난 틈새 등로로 정상에 올라본다.

 

 

남쪽에서 바라본 대왕암

 

武夷山上有仙靈  무이산 산정에는 선령이 있어

山下寒流曲曲淸  산아래 차가운 물은 굽이굽이 맑네

欲識箇中奇絶處  그 중 빼어난 절경 알고자 하면

棹歌閑聽兩三聲  뱃노래 두 세 가락 한가로이 들어보소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櫂歌) 10수 중 첫머리로 무이산에 대한 개황(槪況)을 읊은 것으로서 단순한 경치만을 읊은 것 같지만 사실은 이 경치를 학문의 경지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선비들은 주희의 생활을 자신들의 교과서로 삼았다. 무이정사에서 사원의 모범을 찾았고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읊으면서 주자를 흠모했다. 퇴계는 차무이도가(次武夷櫂歌) 10수를 지었고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해주 석담에 은거하면서 무이산 은병봉(隱屛峰)에서 이름을 따와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지었으며 무이구곡가를 본따서 시조형식으로 고산구곡가(孤山九曲歌)를 지어 우리 산천을 노래 했다.  

주희의 무이구곡에서 유래된 우리나라 구곡은 6개처로 화천 곡운구곡(谷雲九曲), 삼척 무릉구곡(武陵九曲), 괴산 화양구곡(華陽九曲), 선유구곡(仙遊九曲), 고산구곡(孤山九曲), 황해도 해주 고산구곡(高山九曲) 등 6개처가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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